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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맞벌이 부부이다 보니 여행다운 여행을 하기 어려웠다. 봄방학과 설연휴가 겹치면서 국내여행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남편에게 장거리 운전을 시키기 싫은 마음에 여행사를 통한 여행을 결정했다. 어디를 가느냐보다 가족과 함께 하는 방학 중 여행이 중요했기 때문에 결정은 매우 쉬웠다.
일정에 대한 고민은 여행사가 어련히 알아서 했을 것이므로, 시간 맞춰 약속 장소에 나가는 것만 신경을 쓰면 되니 편했다.
통도사는 무지막지하게 넓은 절이었다. 얼마나 많은 인파가 모였는지 차량 정체가 매우 심했다. 자연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은 다양한 절을 가보았는데, 통도사는 왜 이제야 와보게 된 걸까? 태어나서 본 절 중에 가장 규모가 큰 절이었다. 시간에 쫓겨서 극락전 하나만 들어가 보았다. 500년이 넘은 건물 안에 위엄있는 부처님을 바라보며 절을 올렸다. 옆에 젋은 아가씨도 정성껏 절을 하고 있었다. 사람이 몇 백명이 보였건, 경내가 어수선하건 그런건 상관없이 경건한 표정과 섬세한 동작이 그녀의 간절함을 보여주었다. 짧은 찰나였지만 인간은 주변이 아무리 소란스러워도, 자기 마음이 정갈하면 그것만으로 중심이 바로 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소원이 무엇이었건,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기장 시장에는 대개를 파는 곳 위주의 식당이 있었다. 지난 주에 홍게를 먹었으므로 대게는 패스하고 다른 식당을 찾아보았으나, 하나도 안보였다. 가정식 뷔페식당이 하나 보이길래, 거기서 식사를 했다. 여행하며 찍은 사진을 가족과 함께 보며 먹는 소박한 식사였다.
기장시장을 돌다보니 길게 줄을 늘어선 호떡 가게가 나타났다. 대기표를 들고 20분 이상 호떡 집 앞에 줄을 섰다. 그건 그거대로 좋은 추억이다. 평소엔 대기표를 들고 맛집 앞에 줄을 서 있는 것이 불가능했다. 바쁜 일상 중에 가당키나 한 말인가? 차라리 다른 식당을 찾아나서는 우리 가족이었다. 여행 중인 우리는 이런 기다림도 낭만으로 느껴졌다.
용궁사는 해안 사찰이다. 우리 나라 대부분의 사찰이 산에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좁고 짧은 대나무 사잇길을 지나면 갑자기 바다와 너른 경내가 펼쳐지는데, 아찔했다. 넥타이로 목을 조르듯 꽉 묶여서 그 갑갑함에 익숙해진체 보내던 일상에서 갑자기 터저나오듯 펼쳐지는 바다와 사찰의 모습은 엄청난 해방감으로 다가왔다.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바다와 하늘, 사찰이 만나는 그 오묘한 균형감은 내 가슴에 고요를 주었다.
불교란 것이 원래 종교가 아니고 부처의 가르침이건만, 우리나라 절에는 각종 기복신앙과 민간신앙이 덧칠되어서 세속적인 소원빌기가 난무한다. 해동 용궁사도 마찬가지였다. 동전던지며 소원빌기, 석상 만지고 득남하기, 소원등달기, 등등 끝도 없는 세속적 욕망의 세트가 펼쳐진다. 지붕에 그려진 원안의 세개의 점이 부처님의 가르침과, 수행공동체...뭐 그런걸 상징한다고 하는데, 부처님의 가르침과는 대조적인 색색깔 연등이 비빔밥 처럼 아름답다. 원래 하나만 있으면 이쁜줄 모른다. 대조적인 것이 섞여 있어야 비교가 되면서 아름다움이 더 돋보이고, 조화로운 것이다. 사는게 참 요지경이다.
통도사 기둥에 우담바라가 폈다고 난리였다. 50명이상의 사람이 기둥에 둘러서서 문고리 같은 것을 찍고 있길래 뭔가 싶어서 다가갔다. 우담바라를 찍는 중이라고 하셨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니 3000년에 한번 피는 깨달음의 꽃, 또는 중생 구제의 꽃이라고 한다. 곤충의 알을 우담바라로 착각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믿져봐야본전이니까 나도 한장 찍었다. 그리고 마음의 촉으로 가만히 느껴보니 기둥의 하얀 점 하나가 조금 더 선명한 기운으로 느껴졌다. 그걸 보고 사람들이 우담바라라고 하는 가 본데, 그게 만약 진짜 우담바라라면, 진리의 세상은 참으로 작고 또렷한 선함으로 시작되는 구나 싶다. 나이가 드니 시력이 나빠져서, 사람들이 손으로 가리켜줘도 내 눈엔 그 형체가 꽃인지, 점인지 잘 안보였으니 말이다. 그냥 가슴으로 느껴보는 수 밖에...
이 여행기의 마지막 사진으로 해동 용궁사를 들어가는 대나무길을 골랐다.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걷는 동안엔 알 수 없다. 한발 더 내딛으면 천국 같은 광경이 펼쳐질런지, 낭떨어지가 나올런지. 살아있는 동안엔 그냥 계속 내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죽고 싶을 때는 쉬이 죽어지지 않고, 살고 싶을 땐 쉬이 살아지지 않는 것이 인생이 아니던가. 우리들 각자가 지금 있는 자리가 완성형이 아니라 흐름의 일부일 뿐이니 그것이 어둠의 터널이 아니라, 시원하고 정겨운 약간의 설램이 있는 대나무길이길 바라는 마음이다. 어디서나 가볍고 편안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