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밤새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아침에 경주 침수상태가 어떠한지 걱정이 되었다.
일년 농사를 망쳐 망연자실하였다. 이런 저런 형편이니 양심이 찔린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하면 지역경제는 더욱 침체된다. 4분의 그림도 보고 싶고 부처님도 만나고 싶어 용감히 길을 나선다. 용서하시라. 다 나와 같은 마음인지 34명 전원이 승차했다고 한다. 어쨌던 완전 짱이다. 경주에 도착하니 강마다 물이 출렁출렁 흙탕물이 흘러간다. 백년하청의 고사를 남긴 황하가 생각난다. 경주 예술의전당 도착. 다행히 비는 소강상태라 무사히 전시장 안으로 진입했다.
4분의 화백은 1910년대 출생으로 가난한 시기에 태어났고, 가장 힘들고 아픈 고난의 시절을 겪은 분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들이 하나같이 천진 난만한 동심의 세계를 구현했다. 아이들을 그린 동작들은 그야말로 해학적이다. 때로는 자연을 노래하고 우리 삶 주변의 소재들을 별다른 꾸밈없이 화폭에 담았다. 작은 화폭이나 담배종이에 있는 은박지 같은데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마음을, 눈길을 사로 잡는 것은 어떤 힘일까? 4분의 그림은 마치 동심의 세계에서 그려낸 작품같다. 그림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저절로 순화되고 순수해 진다.
박수근 화백의 작품으로 참으로 서민적인 소재들이다. 단순한 구성으로 구도를 잡아 그림을 그렸지만 어디엔가 옛이야기가 덤뿍 담겨있는 듯 보인다. 우리 나라의 서민들의 소박한 모습을 꾸밈없이 표현했는데도 눈길이 간다. 울 엄마, 아버지, 언니, 오빠들의 생활모습이 그대로 재현된 듯하다.
장욱진 화백의 작품이다. 서양화가이자 1세대 모더니즘의 기틀을 열어놓았고, 시대와 공간을 넘어선 인간미가 여전히 느껴진다. 그 시절을 걸어오면서 어떻게 이런 기하학적이며 천진난만한 그림의 심성을 지닐 수 있을까? 이 분들은 생활이 명상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김환기 화백의 작품은 사진촬영 불가라서 눈으로 마음으로 보고 저장한다. 아쉽다. 하지만 사진으로 찍은 들 원작의 느낌을 받을 수가 없으니 직접 보고 느끼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다.
교촌전통마을에 들어선다. 비는 여전히 추적추적 내린다. 월정교 아래 징금다리 건너는 돌다리가 흔적도 없이 물에 잠기어 버렸다. 아! 그러나 예전 어느날, 경주의 이런 풍광이 있었던가? 나는 여기 있고 어떤 인연으로 이 빗속의 교촌마을을 홀로 만끽한다. 천천히 구석구석 뒷골목까지 다 돌아보았다. 평소에는 많은 인파로 제대로 다닐 수가 없었는데 최부자댁의 툇마루에 앉아 한없이 비를 보면 멍때린다. 지금은 나만의 영역이 되었고, 역사속 그 수많은 인물들은 가고 없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이 빗속의 정막을 누리고 있으니, 내가 주인이다. 최부자께 감사드린다.
석굴암은 도로 사정으로 국립경주박물관으로 계획이 변경되었다. 오기전 걱정이 석굴암을 가게되면 도로가 위험할 것 같았는데 근심을 덜었다. 여행사에서 손님 안전을 가장 최우선시 하기 때문에 우리는 걱정안해도 되었다. 계획 변경은 내겐 행운이었다. 입구로 들어가자 깃발표지에 고려상형청자특별전의 문구가 보였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으니 나는 별관으로 바로 들어갔다. 고려인의 손재주로 빚은 청자를 마음 껏 볼 수 있는 안복을 누렸다. 대만 고궁박물원도 두어번 가서 보면서 내 나라의 옛 것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는데, 올 11월 에이펙(APEC) 정상회의가 경주에서 개최된다고 특별전들을 모두 무료로 개방했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품들이 대거 내려와 전시되고 있다. 내겐 행운의 날이다. 복받은 날이다.
고려상형청자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마지막 여행지인 불국사로 향했다. 비는 그냥 걸을 만하게 내렸다 거쳤다를 반복한다. 여기 역시 입장료가 무료라 일행들이 가는 정문을 가지 않고 뒷문인 불이문쪽으로 걸어갔다. 경주는 자주오는 곳이고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겠다는 내나름의 계획이 있었다. 숲속을 걷고 싶었다. 계곡의 물소리는 우렁차게 소리를 내며 흘러 가고, 새소리 또한 거기에 질세라 짹짹 쐐쐐 소리가 한 껏 올라간다. 한여름의 숲속 나무는 그 키를 자랑하며 높이높이 하늘로 뻗어있다. 울창한 숲속을 홀로 걸으며 정말 대자연을 마음껏 누리고 즐겨본다. 이런말이 생각난다. 상놈은 발떡이다. 뭔 소린가? 옛날 아랫것은 부지런히 다녀 먹을 것을 얻었나 보다. 요즘 먹을 것은 충족하니 눈으로 보는 눈떡?인가. 안복으로 하자. 부지런히 발품 팔아 안복을 누리는 거지.
우중에 안전운전해 주신 운전기사님, 다정한 목소리로 다정다감하게 가는 곳마다 설명을 열심히 해주신 인솔자 안성호 님께 감사드린다. 오늘 하루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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