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남 대흥사, 땅끝마을 소감

4월의 첫 주말, 해남으로 떠났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대흥사와 땅끝 마을을 보러 모처럼 삼성여행사 전세버스에 몸을 실었다. 달구벌에서 무려 4시간이나 걸리는 먼 거리의 여행지로, 내 영혼을 담은 육신이 장시긴 봉사하는 날이다.

고속도를 달릴 때는 먼 산에 산벚꽃이 버짐처럼 피어있는 등 차창으로 흘러가는 풍경이 아름답다. 시간이 만들어  내는 자연의 변화로, 꽃이 피고 잎이 나는 아름다운 봄날 속으로, 오늘 내 하루의 역사를 쓰러간다. 유한한 삶속에서, 강제적이고도 폭력적으로 흘러가는 세월 속의 내 인생길에 화초를 심고, 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해남의 시공(時空)으로 이동 중이다. 오늘 날, 우리들의 삶은 풍요롭기는 하지만 인간답지 못하고, 편리하기는 하지만 편안함이 없는 것이기에, 영육(靈肉)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는 여행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을 듯하다.

해남 대흥사 입구에 도착하자, 점심 때가 되어, 웰빙음식촌에서 식사를 한다음 대흥사로 갔다. 대흥사는 두륜산 도립공원 내에 위치한 조계종 제22교구 본사로 일명 대둔사로도 불리며, 아도화상 또는 신라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으며, 201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사찰이다.

사찰 입구인 관문을 지나 대웅전으로 가는 길에는 부도탑과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여관인 유선관이 있으며, 이 여관은 과거 수도승이나 절을 찾는 신도들이 숙박했던 곳이라 한다. 골짜기 깊숙히 들어와 일주문과 해탈문을 통과하자, 대둔산을 배경으로 대흥사가 안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흥사는 일반 사찰과는 달리 가람 배치가 특이했다. 개울인 금당천을 경계로 남북으로 구분하여 대둔산 정면인 남쪽에는 일반 전각을 배치하였고, 북쪽에는 대웅보전 등을 배치하는 등 다른 사찰의 교구 본사와는 달리 구석진 곳에 있는 대웅보전의 규모가 다소 초라하게 보였다.

대흥사 답사를 마치고 50여 분을 달려 땅끝마을로 가서, 모노레일을 타고 갈두산(156m) 사자봉 정상에 위치한 땅끝 전망대로 갔다. 이 전망대는 높이가 40m로, 역동적으로 타오르는 횃불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이라 한다. 전망대에 오르니, 흑일도, 백일도, 보길도, 노화도 등 다도해의 풍광이 펼쳐져 감탄사를 입에 물게 했다. 날씨가 좋으면 제주도 한라산까지 볼 수 있고, 일출과 일몰 모두를 볼 수 있으며, 매년 이곳에서 해넘이, 해맞이 축제가 열리기도 하는 곳이라 한다. 그런데 오늘은 볼 수 없기에, 훗날 느린 여행 때를 기약했다.

전망대를 내려와 바닷가에 설치된 땅끝탑을 보러, 굽이굽이 도는 경사진 데크길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절벽에 긴 삼각형의 뾰족한 탑과 스카이워크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 탑이 남해와 서해의 경계선이라 한 장소에서 남해와 서해의 감흥을 느껴보면서, 풍광이 일품인 이곳 곳곳을 눈에 담고 감상하다가 둘레길을 따라 승차장으로 갔다. 그리고 오늘의 마지막 코스이자, 해남군청이 지원한다는 해남 로컬 푸드 직매장으로 가서 어부인한테 칭찬 받기 위한 싱싱하고도 청정한 채소류를 한보따리 사서 귀가 길에 올랐다.

돌아오는 길, 먼 거리로 이내 이둠이 내렸다. 오늘 방문한 땅끝 마을이란 이름의 첫 인상이 왠지 애틋하고도 정감이 가슴에 서린다. 멀리 떠난 막동이에 대한 어미의 그리움 같기도 하고, 보릿고개 시절, 외지로 떠난 새끼손가락 같은 끝순이에 대한 모정 같은 어감이 뭍어나기도 했다. 그래서 땅끝 마을에 오니, 긴 여로 끝에 도착한 마음의 고향 같기도 하다. 또한 땅끝마을은 종점이자 시작점으로, 희망의 상징이기도 하여, 방문하는 여행객들에게 희망의 기운을 받아가는 계기도 되는 것 같다.

오늘도 즐겁고 보람된 날로, 승정원 일기 같은 내 개인사의 기억으로 저장되게 되었다. 인생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단 하나 뿐인 생명의 소비로 살아가는 것이기에, 하루라도 허투로 살면 그만큼 자신에 대한 직무유기요, 죄를 짓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생업에서 벗어난 나이대라면, 자기를 사랑해야 마땅하다. 미국 가수 휴트니 휴스턴은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아는 것이 가장 위대한 사랑이라고 갈파했다. 지당한 말씀이다. 아무리 100세 시대라고 말들하지만,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지공거사라면 내일을 모른다. 누구나 죽음을 알지만 아무도 때를 모르고, 병마와 싸워도 상대는 내게 패배의 시점을 알려주지 않는 것이 삶이고 인생이다.

그러기에 자신을 사랑하는 법 찾기를 지체하면 제한 시간의 초침만 돌아가기에, 지금 당장 실천해야지 미루어서는 안 된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이 펼쳐지는 곳은 오직 지금, 이 자리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욕을 부리는 것도 금물이다. 산다는 것은 지나고 나서 되돌아 보면, 삶의 흐름이고, 그 시간 그 장소에서 겪은 상황에 지나지 않음을 볼 때, 인생은 삶의 흐름을 경험하다가 태어날 때처럼 빈 손으로 떠나야 하는 모래성 쌓기 같은 무상(無常)한 삶이란 것을 나이테가 가득해졌어야 아는 진리이다.

오늘 이 여행의 길에서 생각해보건데, 삶에서 어깨를 짓누르는 건, 어쩌면 삶의 무게 보다도 내가 지어낸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더 커지 않을까 한다. 그래서 지공거사 이상의 삶을 살아가는 연령대라면, 이제는 비우고 내려 놓는 삶과 더불어 한층 더 자기를 사랑하는 패턴으로 살아가야함을 가슴 깊이 새겨본다. 그리고 이번 여행길의 가이드이신 주혜원님의 상세한 설명과 안내 등 정성어린 안내에 이 자리를 빌어 깊이 감사드립니다.

※ 24.4.6(토) 해남 여행길에서